‘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 제목처럼, 여행에서도 굽은 길을 느리게 갈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홍천에서 구룡령을 넘어 내려서자마자 이정표가 서 있는 양양의 ‘갈천약수’가 그런 곳입니다. 고속도로를 택했다면 거기 그게 있는지조차 모를 것이고, 국도로 구룡령을 넘는다 해도 속도를 좀 높이면 작은 안내판을 지나치기 십상인 곳입니다. 구룡령 고갯길을 넘자마자 양양에 갈천약수가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았지만, 사실 그곳까지 가본 적은 없습니다. 오르막의 숲길을 1㎞쯤 걸어서 올라야 하는 까닭이었습니다. 힘들어서는 아니었고, 다만 길 위에서의 마음이 바쁜 탓이었습니다. 목적지가 있으면 늘 바빠지는 법.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간다고 했지만, 사실 구룡령을 넘는 길도 마음만은 바빴다는 얘기지요.
갈천약수로 이어지는 숲길을 이번에는 지나치지 않고 걸어 오르기로 했던 건, 돌이켜보면 온전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이었습니다. 무섭게 확산하는 감염병은 여행과 이동을 막았습니다. 속도를 늦추게 했고, 의미를 물었습니다. 여행의 결핍이 궁극적인 여행의 목적을 묻도록 한 것입니다. 이 와중에 얻은 대답은 ‘목적은 과정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모든 과정에 있습니다. 계획과 준비하는 과정에, 길 위를 기웃거리는 풍경 속에, 잠깐 들른 주유소에서 올려다본 푸른 하늘에….
갈천약수로 이어지는 길은 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청량한 숲길이었습니다. 서늘한 숲 그늘 아래 그 길을 걷는데, 숲의 초록이 온몸에 묻어날 것 같았습니다. 탄산 가득한 약수의 맛처럼 알싸한 청량감은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한층 더해졌습니다. 걷는 내내 밀려온 행복감은 결핍이 준 선물과도 같았습니다.
당연한 듯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알게 된 것처럼, 여행으로 인해 삶이 얼마나 다채로워졌던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이제 다시 여행이 시작된다면 물리적인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속도도 늦추고 무심히 지나쳤던 곳을 찬찬히 다시 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여행에는 ‘목적지’가 있지만, 여행으로 도달하고자 한 목적지가 어디 ‘도착’뿐이겠습니까.
September 04, 2020 at 09:22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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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은 도착 아닌 '과정'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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