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하게 당긴 일상의 줄이 툭 하고 느슨해질 때가 있는데, 가령 이런 문장을 읽을 때가 그렇다. “여행이란 마음에 무늬를 새기는 일일지도 모른다.”(p106) 그의 말대로라면 작가 최갑수의 마음은 그가 20년간 새긴 종횡, 나선형 무늬들로 촘촘하게 뒤덮여 있을 것이다. 8테라 외장 하드에 자료가 가득 담길 동안 20년을 여행작가로 살았던 그가 국내 여행지를 모은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을 펴냈다.
금줄이 쳐진 원주 성황림 신들의 숲, 다정하고 세련된 대전 소제동 골목, 화가 나혜석의 흔적이 깃든 예산 수덕여관. 이젠 하나의 시그니처가 된 ‘최갑수’라는 감성 필터를 거친 사진들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든다. 간절곶의 일출, 고흥 봉래산의 울창한 삼나무숲이나 이국적인 풍경의 남열해돋이해변, 강릉의 파도, 태백의 숲, 동막의 일몰. 익숙했던 여행지의 풍경들도 그의 뷰파인더를 거치면 이상하리만치 현실감을 잃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이 좋게 머리에 애기동백 나무를 이고 있는 전남 신안군 암태도 기동삼거리 벽화가 책 커버를 장식하고 있는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 한국의 아름다움을 글과 사진으로 아로새긴 이 책은 가이드북이라는 카테고리로 규정짓기엔 그 감성지수가 도를 넘는다. 맞다. 이미 두 번의 개인전을 열기도 한 프로 사진가였다. 그뿐인가. 보는 이를 순식간에 자신의 여정 길로 데려가는 솜씨는 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바람은 잔잔하고 바다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순한 날, 강진에 갔다. 동백이 눈물처럼 떨어진 고요한 숲길을 걸어 다산초당을 찾았다.”(p326) ‘최갑수’라는 필터를 거치면 포천은 ‘자연주의’ 여행으로, 대전은 ‘뉴트로’ 여행지로, 영월은 ‘가족 여행지’로 바뀐다. 그의 사진과 글로 간접 여행을 하고 나면 충남 논산, 울산 울주, 전북 장수 등 여행지로는 다소 덜 알려진 곳도 여느 도시에 뒤지지 않는 매력적인 여행지로 각인된다. 한 장의 사진이 원고지 100매 글보다 더 강한 여행의 유혹을 던진다고 믿는 최갑수 작가. 생각해 보면 그는 늘 길 위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미야기현의 지옥온천에서 뜨거운 용출수를 피해가며 사진을 찍으려 애쓰거나 홍콩 라마섬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피사체를 쫓던 그의 카메라를 기억한다. 까치발을 들고 아찔한 스카이워크 끝에 서 있거나, 목포의 노포 수십 곳을 도느라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 그가 그렇게 힘들게 노동한 대가로 사람들은 책상 옆에 붙여두고 싶은 환상적인 사진들을 얻는다. 책은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이라는 제목에 맞게 국내 대표적인 여행지 50곳을 당일치기 코스와 1박 2일 코스로 나눠 ‘자연주의’, ‘가족 여행’, ‘레트로 감성’, ‘미식 투어’, ‘시티 투어’, ‘역사 문화’ 등 테마별로 나눠 소개한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남양주 등 수도권과 춘천, 포천 등 강원권, 보은, 괴산, 서산 등 충청권과 대전은 하루 여행 코스로, 부산과 대구를 비롯해 강릉, 태백, 울진, 목포, 고흥, 신안 등을 하루 더 여행 코스로 묶었다. 챕터 말미 ‘more&MORE’ 코너에는 맛집과 더 가볼 만한 곳, 각종 체험 등 여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꼼꼼하게 정리해 두었다. 출장 가는 후배들이 ‘툭’ 하고 물어보면 ‘탁’ 하고 맛집 리스트를 뱉어내던 식객의 솜씨가 거기 들어 있다. 저자는 중국집과 선술집, 허름한 백반집을 애정해 때묻은 간판이 있는 가게로 서슴없이 들어서지만 유명식당이나 새롭고 낯선 음식을 피하지도 않는다. “모든 음식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맛있으며, 맛없는 음식을 먹기에 아까운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여행기자와 작가로 일하며 ‘매일경제신문’, ‘한겨레’, ‘경향신문’ 등 일간지와 ‘론리 플래닛’, ‘더 트래블러’, ‘트래비’ 같은 각종 여행 전문지에 칼럼을 쓴 저자는 여행 에세이 『밤의 공항에서』,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와 여행책 『당신에게, 여행』, 『맛있다, 제주』 등을 펴냈다. 1997년 『문학동네』에 시 ‘밀물 여인숙’으로 등단해 시집 『단 한 번의 사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슴슴한 어투로 이어지는 그의 에세이를 읽다가 별안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바로 무심한 듯 툭 치고 지나가는 그 서정성 때문이다. 그의 글과 사진을 따라 해외보다 아름다운 국내로 1박2일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가라면 다음 출사지를 알려줄 최고의 내비게이션이자, 주말에 어디를 갈지 고민할 필요를 없애주는 책이다. 책을 덮을 때쯤엔 올이 부드럽고 바다 향이 진한 장흥 매생이가 먹고 싶어진다. 낮술을 좋아하는 그와 개평마을에서 함양의 솔잎으로 만든 솔송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기도 하다. 바로 책을 덮고 떠나게 만드는 그의 솜씨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보다북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1호 (20.08.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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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4, 2020 at 09:1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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