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수요가 늘면서 여행의 양상도 바뀌는 듯합니다. 변화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른바 ‘승자 독식’체제의 균열입니다. 유명 여행지에, 유명 맛집에 집중되던 여행자의 발길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습니다. 대신 이름난 여행지에 밀려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던 지방 중소도시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관광지의 소문난 맛집 앞에 늘어선 줄의 길이도 짧아졌습니다.
이런 변화가 꼭 ‘거리두기’ 수칙의 영향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행 문화 전반이 소비와 탐닉 위주에서 휴식과 성찰로 변화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채우면 채울수록 점점 더 욕망이 커지는 소비 위주 여행의 허망함을, 감염병 창궐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일까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동안 캠핑과 걷기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경제 위기의 파도 속에서 가족 해체의 비극은 한배를 탄 가족과의 연대를 더욱 튼튼하게 했고, 그게 가족과의 여가인 캠핑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이제 다시 감염병의 위기 속에서 등산과 1인 여행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는 내로라하는 관광지도, 인기 폭발의 SNS 명소도, 이름난 맛집도 필요 없습니다. 자연에게서 위로받거나, 도시를 느리게 걷거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IMF 당시 수요는 급증했지만, 캠핑장은 태부족이었고 시설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나마 손톱만 한 위안이었던 가족과의 여가를 정부가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던 겁니다.
코로나19의 와중인 지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들은 대규모 혹은 집적 관광지 조성에 몰두해왔습니다. 대형 주차장을 갖춘 관광지를 조성하고 버스 관광객을 유치하고, 맛집거리를 만들어 해마다 경신되는 관광객 숫자를 셌습니다. 하지만 이제 여행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관광 활성화의 당위와 순기능으로 경제적 효과를 앞세우지만, 코로나 시대의 관광은 예전만큼 소비를 수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 필요한 건 여행입니다. IMF 당시 캠핑장을 더 늘려야 했던 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 ‘좋은 여행’이 필요한 것도 꼭 경제적 효과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July 03, 2020 at 09:2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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