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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가 진료비 깎아줬다고…"980만원 토해라" 명세서 폭탄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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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계약서 이미지. 셔터스톡

보험계약서 이미지. 셔터스톡

 
대구에 살던 신모(사망 당시 63·여)씨는 지난해 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폐암 치료를 받았다. 그는 생활비 등을 보태려 A손해보험사에 100여만 원의 실손보험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150여만 원의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이 신씨에게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건보 '본인부담상한제'가 발단 

건보공단은 2004년부터 본인부담상한제를 운영 중이다. 만성·중증질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건강보험 가입자가 1년간 쓴 건보 적용 의료비 가운데 상한 기준을 넘은 금액을 돌려준다. 상한액은 소득기준에 따라 다르다. 최저 소득층(건보료 1분위) 상한액은 최대 125만 원, 최고 소득층(10분위)은 585만 원이 적용되는 식이다.
 
신씨는 건보공단 지역가입자였다. 한달에 2만 원가량의 보험료를 납부했다고 한다. 건보료 2분위에 속해 연간 건보진료비 157만원까지만 부담하고 초과금은 건보에서 돌려받는다. 신씨는 건보공단에서 57만 원을 환급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보험사에 실비 처리를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신씨는 지난 6월 보험금을 받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민간 보험사는 환급금으로 본인부담금이 줄어든 만큼 ‘중복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실손보험의 기본원리는 보장이다. 이득금지 원칙을 두고 있다.
 

"환급금 나오자 980만원 내놓으라" 

배모씨는 지난해 6월 간이식 수술을 마쳤다. 간 기증자는 가족이었다. 퇴원 후 배씨는 B화재보험사에 2500만 원의 의료비를 청구했다.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았던 비급여 항목 비용들이다. H화재보험사는 청구한 의료비를 우선 처리해줬다.
 
하지만 배씨가 건보공단에서 환급금을 받자 달라졌다. 보험사는 배씨에게 연락해 이미 지급한 보험금 가운데 980만 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배씨 가족은 “건보 공단에 문의하니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마치 ‘채무자’ 대하듯 지금도 계속 독촉 전화가 온다”고 하소연했다. 
건보공단으로부터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을 받을 경우 그만큼의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 담긴 각서. 사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건보공단으로부터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을 받을 경우 그만큼의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내용이 담긴 각서. 사진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보험사 한해 평균 434억 원 지급 안해  

본인부담상한제 환급금을 놓고 벌이는 환자와 보험사 간 ‘실손보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환급금 만큼의 보험금을 안주거나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돌려달라는 사례가 상당수다. 보험가입 때 아예 각서를 받는 업체도 있다. 관계기관들이 뒷짐진 사이 갈등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국내 30개 생명·보험사가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를 이유로 지급하지 않은 실손비용이 2017년 328억172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후 2018년 419억5970만 원, 지난해 554억6670만 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너무 큰 의견 차이 

하지만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16년 본인부담상한제와 관련한 환자·보호자의 불만이 한국소비자원에 27건 들어왔다. 2014년 8건, 2015년 18건이었다. 소비자원은 실태조사에 나섰다. 의견이 확연히 엇갈렸다.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보험연구원은 사실상 보험사 논리를, 건보공단·한국손해사정사회는 환자의 손을 들었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윤창현 의원에 보낸 답변자료에서 “실손의료보험은 가입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장하는 상품”이라며 “하지만 환급금은 가입자가 실제 부담한 의료비가 아니다. 따라서 실손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건보공단은 “환급금으로 환자의 본인 부담금이 줄어든 것으로 간주해 민간 보험사에서 이를 공제하는 게 제도 도입 취지 등을 고려할 때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의 사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인 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수술 이미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수술 이미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습니다. 연합뉴스

 

환자 손 들어준 소비자원 

소비자원은 이미 3년 전 실태조사를 거쳐 환자·건보공단 쪽 손을 들어준 상태다. 판례와 약관 정보 등을 두루 검토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소비자원은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에 제도개선까지 권고했다. 사회복지 서비스 강화라는 정부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환급금과 실손보험간 ‘중복 보상’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실손의료보험의 표준약관은 지난 2009년 10월 제정됐다. 본인부담상한제를 통한 환급금을 ‘보상하지 않는 사항’으로 두고 있다. 소비자원은 아예 이 약관을 삭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복지부는 "협의 중"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장은 “공보험인 건강보험과 사보험인 실손보험은 각자 영역·목적이 다르다”며 “하지만 실손 보험사들의 경우 이익에 지나치게 매몰돼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고 있는 공적급여(환급금)마저 회수해가는 실정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핵심 관계자는 “환자들이 요청한 민원내용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며 “실손보험 상품내용이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 환급금 문제 등을 포함해 금융위원회와 협의 중이다. 또 가입상품의 보장범위도 어떻게 할지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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