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치법 통과 순간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법안 가결이 확인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거나 포옹하며 활짝 웃었다. 퇴장 후 국회 로텐더홀로 나와 있던 한국당 의원들은 그 순간 침울한 표정으로 애국가 4절을 부르고 있었다.
27일 선거제 개편안 처리 때와 같은 격렬한 몸싸움은 없었지만 그 대신 ‘목청 싸움’이 길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 시작 전부터 의장석 주변을 둘러싸고 ‘문 정권 범죄은폐처=공수처’라고 쓰인 현수막을 둘러쳤다. 27일과 비슷한 풍경이었지만 의장석으로 향하는 통로를 점거하진 못했다. 국회 경위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어서다. 한국당 소속인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질서유지권도 발동이 안 됐는데 왜 이러냐”며 경위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한국당 의원들은 “무기명투표 허용하라” “공수처법 결사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본회의장 분위기를 달궜다.
투표 방식을 두고 민주당과 한국당 간 기싸움은 절정에 달했다. 김정재 한국당 의원이 “(민주당) 여러분이 기명투표를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다.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총선 공천)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라고 연설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 야유에 나섰다. 반면 고용진 민주당 의원이 “한국당의 의사진행 방해와 폭력행위에 대해 수사당국에 고발”을 거론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고발해! 내려와!” 등의 고성을 질렀다. 고 의원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6시51분 무기명투표 안건이 부결되자 “민주주의는 죽었다” “다 해 쳐먹어” “나라도 팔아먹어라” “(문희상) 아들 공천만 되면 다 팔아먹지” 등 한국당 의원들의 야유가 다시 한번 본회의장에 울려퍼졌다.
‘데시벨 싸움’은 한국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면서 끝이 났다. 10여분 뒤인 오후 7시2분 공수처법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통과됐다. 6시34분 개의 선언 이후 28분 만의 ‘속전속결 처리’였다. 가결 직후 민주당 전해철·표창원·박찬대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법안 통과 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회의 결단에 경의를 표한다.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의 제도화가 차례차례 이뤄지고 있기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쁘다”고 했다.
반면 로텐더홀에서 애국가를 부르던 주광덕 한국당 의원은 눈물을 훔쳤다. 주 의원은 “갑자기 눈물이 났다. 수적 우세를 가지고 이렇게 밀어붙이니 참담하다”고 했다. 홍준표 한국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야당의 존재 가치가 없다면 오늘 밤이라도 모두 한강으로 가라. 그러고도 견제하겠다고 표 달라고 할 수 있겠냐”며 “답답하고 한심하다”고 썼다.
한편 본회의가 예정된 이날 오후 6시가 넘어서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계속 이어지면서 청문회장에서도 실랑이가 벌어졌다.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본회의 개의 중에도 법사위가 열린 적이 많다”고 하자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 의원인 추미애) 후보자 역시 (본회의) 출석 의무가 있다. 추 후보자를 인질로 잡는 것이냐”고 따졌다. “갈 사람은 가라”며 회의를 강행했던 여 위원장은 본회의 개의 소식을 들은 뒤 청문회 정회를 선언했다.
한영익ㆍ김기정 기자 hanyi@joongang.co.kr
2019-12-30 11:30:4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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