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中 청두 방문 계기
작년 9월 뉴욕 유엔총회 계기 회담 후 15개월 만
아베 "중요한 일한 관계 개선" 文 "가장 가까운 이웃"
수출·징용 구체적 해법 못 찾으면 내년도 갈등 우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년 3개월 만에 만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공감하며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 개선에 청신호를 켰다. 양국 정상은 서로를 “중요한 이웃” “중요한 동반자”라고 평가하며 그 동안 경색됐던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다만 갈등의 근본 원인인 강제징용에 대한 입장차가 첨예한 데다 수출 규제 해결에 대해서도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한 채 구체적인 해법을 도출하지 못하며 내년에도 갈등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베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文 “대화로 풀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8차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청두(成都)를 방문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계기의 회담 이후 15개월 만에 성사된 것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6번째다. 지난 달 5일 태국 방문 당시 문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손을 이끌어 11분간 ‘깜짝 환담’을 진행한 뒤 한 달 만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모두 발언을 통해 “중요한 일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오늘은 아주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으면 한다”며 “일한 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이웃이다. 북한 문제를 비롯해 안전 보장에 관한 문제는 일본과 한국, 일본, 한국, 미국간의 공조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방콕 만남에서 일본과 한국 양국 관계 현안을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며 “양국이 머리를 맞대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조속히 도출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 한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교역과 인적 교류에 있어도 더욱 중요한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한일 정상회담은 당초 예정됐던 30분보다 15분 길게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그간 보고나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들었던 내용 외에 직접 당사국의 입장을 듣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만남을 통해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지,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가자라는데 양 정상이 합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되고, 협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한일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대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이 자주 대화하자고 약속한 것은 큰 진전”이라며 “당장 일괄 타결은 아니지만 대화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 힘 실리나?
한국 정부가 수출 규제에 대한 빠른 해결을 요구한 데 대해 일본은 수출 관리 정책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해 향후 한일 통상당국간 대화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취한 수출 규제 관련 조치가 7월1일 이전 수준으로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아베 총리는 “3년 반 만에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매우 유익하게 진행됐다고 들었다. 앞으로도 수출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자”고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달 22일 지소미아를 조건부 연장하고,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중단하는 대신 일본과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시작키로 했다. 이후 지난 16일 일본 도쿄에서 가진 국장급 ‘제7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를 진행했다.
이후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0일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가운데 포토레지스트에 대해 개별 허가제에서 ‘특정포괄허가제’로 변경키로 하면서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수출규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으로는 미흡하다고 평가하며, 수출 규제 조치의 조속한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일본 경산성이 한국의 ‘화이트 리스트 국가’ 복원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향후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지난 18일 ‘한일 기자 교류 프로그램’으로 도쿄를 방문한 한국 외교부 기자단과 만나 “신뢰 관계를 다시 구축하거나 갭을 채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밝혔다. ◇한일, 강제징용 입장차 ‘팽팽’…대화 약속했지만 ‘첩첩산중’
양국 정상은 일본 수출 규제의 발단이 됐던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놓고선 입장차를 확인하는데 그쳤다. 추후 실무 협상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정상간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에 공감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찾을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고민정 대변인은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정상은 서로 입장차를 확인했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며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고 정상간 만남이 자주 이뤄지길 기대한다는데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정상회담에 앞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茂木 敏充) 일본 외무대신은 의제 조율을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진행했지만 강제징용을 놓고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교부는 회담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강 장관이 강제 징용 판결 문제와 관련해 모테기 대신이 일본 측의 기존 주장을 언급한 데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일본 NHK는 모테기 외무상이 강제 징용 문제가 한일 관계의 최대 과제라며, 한국에 국제적 위반 상태 시정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는 해결됐으며,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 존중, 피해자 실질적 구제, 한일 관계라는 세 가지 원칙을 토대로 강제 징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에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을 더한 ‘1+1+α’ 기금 조성 구상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지만 피해자 단체를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이 빠졌 있다”는 반발이 확산되며 암초에 부딪혔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한·일 모두 쟁점 사항을 부각시키지 않은 채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된 한일 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말고 봉합해 나가자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며 “다만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국내 정치에서도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양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면 풀리지 않겠냐는 생각을 밝혔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며 “강제징용 문제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데 한일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재산 현금화 조치가 이뤄지는 내년 3,4월께 한일 관계가 또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2019-12-24 10:40: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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